인간문화재 송덕기 영감: 잃어버릴 뻔한 택견을 오늘날로 되살린 마지막 거장
1893년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난 송덕기 선생은 열두 살 때 배운 택견을 평생 몸에서 놓지 않았고, 그 끈질긴 수련 덕분에 거의 사라질 뻔했던 택견이 198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화려한 도장도, 많은 제자도 없이 홀로 명맥을 지켜온 한 사람의 인생이 결국 한 무예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은 셈입니다.
한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꾸준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송덕기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몸에 밴 동작을 잊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오늘은 택견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리는 송덕기 선생의 생애를 자세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1. 택견을 지켜낸 한 사람, 송덕기의 삶
송덕기 선생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일대기를 넘어 한 무형문화유산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그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면 택견 전승의 전체 그림이 더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1-1. 송덕기는 누구인가 - 필운동 소년에서 택견의 거목으로
1) 열두 살에 만난 스승 임호
송덕기 선생은 1893년 서울 사직공원 인근 필운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순간은 열두 살 때, 당시 택견의 명인으로 이름 높던 임호(林虎)를 만나면서 찾아옵니다. 임호는 인왕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어린 송덕기는 그의 문하에서 택견의 기초부터 착실히 배워나갔습니다. 이때 몸에 익힌 동작들이 훗날 택견 전승의 유일한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택견 외에도 다재다능했던 인물
송덕기 선생은 택견 하나에만 몰두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조선포병대에서 철봉을 가르쳤고, 축구단 선수로도 활약했으며, 스무 살 무렵부터는 무려 50여 년간 황학정에서 활쏘기로 몸을 단련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신체 활동을 두루 섭렵한 이력은 그가 얼마나 몸 쓰는 일에 타고난 감각을 지녔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런 폭넓은 경험이 그의 택견 동작에도 유연함과 안정감을 더해주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2. 홀로 명맥을 지킨 수십 년의 세월
1)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침묵
앞선 글에서도 다루었던 내용인데, 일제강점기에는 택견 같은 집단 놀이 문화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이 시기 송덕기 선생 역시 공개적으로 택견을 펼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조용히 개인적으로 동작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화려한 무대도, 주목하는 시선도 없던 이 긴 침묵의 세월이야말로 그의 인내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유일한 전수자로 남다
해방 이후 임창수, 신한승 등이 택견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때, 실제로 온전한 기술을 전해줄 수 있는 전수자는 사실상 송덕기 선생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택견을 몸에 지니고 있었는지를 방증하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가 중간에 수련을 놓아버렸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택견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에 택견이 오늘날 존재함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3. 인간문화재 지정과 오늘날까지 이어진 유산
1) 1983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송덕기 선생의 오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습니다. 1983년 6월 1일, 택견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송덕기 선생은 제자인 신한승과 함께 초대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존재조차 희미했던 무예가 국가 차원의 문화재로 공식 인정받기까지, 그가 홀로 견뎌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2) 제자들과 오늘날의 택견
이후 송덕기 선생은 임창수를 비롯한 여러 제자에게 자신이 지켜온 기술을 전수했고, 1971년에는 경복궁에서 대련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1987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가르침은 여러 보존회와 협회를 통해 이어져,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택견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택견을 배우고 즐기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마무리하며
송덕기 선생의 생애는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는 묵묵한 꾸준함이 결국 역사를 지켜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시절에도 몸에 밴 동작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인내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택견이라는 소중한 전통 무예를 계속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송덕기 선생을 기리는 추모 행사나 관련 자료집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꾸준함이 만들어낸 역사의 무게를 조금 더 가까이서 느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번 글을 작성하면서 택견의 뿌리를 지켜온 인물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택견의 핵심인 '품밟기'에 담긴 원리에 대해서 글을 작성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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